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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실로: 이스라엘의 첫 중앙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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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30 00:28

    본문

    실로: 이스라엘의 첫 중앙 성소


         사사기의 저자는 실로의 위치를 정밀하게 소개한다.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21:19). 현재 벧엘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5km에 있다. 세겜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벧엘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더 올라가면 길가 오른 편 언덕 위에 ‘고대의 실로’가 나온다. 실로는 높은 산지의 거친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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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여호수아는 이 외딴 곳에 성막의 터를 잡았을까? 실로에서 바라 보는 주위의 언덕은 특이한 느낌을 준다. 실로는 성막을 안치할 만한 특별한 매력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실로는 에브라임 지파의 북쪽 경계 지역에 있고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교차로에 있으므로 지리적으로는 12지파의 중심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여호수아 시대에 실로 주위에 강력한 가나안 도시 국가들이 없었던 점도 고려가 되었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산악 지역에 거점을 잡은 후(수 17장) 가장 먼저 성막을 길갈에서 실로로 가져 온다(수 18:1). 르우벤, 갓, 므낫세 절반 지파는 요단 강 동편에 기업을 이미 얻었다.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가나안 산지에서 기업을 얻었다(수 17장). 이제 나머지 일곱 지파가 기업을 찾아 나서야 한다. 바로 이 새로운 전환기에 여호수아는 성막을 실로에 세운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신 12:8, 9), 이스라엘의 안보와 연합을 상징하므로 여호수아는 결정적인 전환기에 실로에 성막을 세워 안정과 도전의 발판을 만든다. 이후 실로는 사사 시대의 중앙 성소가 되었고 사사 시대의 말기에 블레셋의 공격으로 폐허가 될 때까지(주전 1050년) 이스라엘의 영적인 중심을 이루었다. 실로 이후 성막은 놉 땅(삼상 21:1; 현재의 스코푸스 산 히브리대학교)과 기브온(왕상 3:4)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솔로몬의 성전으로 완성되었다.


           유대 문헌인 미쉬나에 보면 “실로의 성막은 아래로는 돌벽으로 세워지고 위로는 천막으로 덮어 ‘쉼터’(menuha)가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Zebachim 14:6). 성막은 광야에서는 벽과 지붕이 천막으로 만들어졌고, 솔로몬 성전은 벽과 지붕이 돌로 세워졌는데, 실로의 성막은 벽은 돌로, 지붕은 천막으로 만들어진 점이 흥미롭다(M. Hattin, Joshua, 2014). 천막 치고 살던 사람이 돌집에 살기까지 임시적으로 벽은 돌이지만 지붕은 여전히 천막인 곳에서 잠정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이것은 영적인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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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실로에는 거의 모든 곳에서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발굴한 고대 가나안 성터(주전 1750—1550년)는 높이가 25미터가 되는 높은 성벽이 첩첩이 쌓여져 있다. 모세가 보낸 12 정탐군들은 이와 같은 성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민 13:28). 옛 실로의 성막터로 추정되는 곳인 북쪽 언덕에는 큰 자연석 돌판이 바닥에 그대로 깔려 있어서 이곳이 제사를 드리는 곳일 수 있다는 추정을 하게 된다.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는 주후 4세기에 이곳을 방문하였다. 입구에는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교회당의 터가 있으며 바닥에는 모자이크가 있다. 교회당 터의 입구에 ‘다윗의 별’ 모자이크가 있는 것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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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1월 24일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